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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지방경제사를 밝힐‘市弊矯捄碑’금석문 확인-  

 

경남 합천군은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실시된 ‘합천 삼가면 주민고객 어울림센터 조성사업’ 부지 내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지방지도에서 확인되는 삼가읍성 아사(衙舍 : 조선시대 관청의 건물)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7일 밝혔다.

 

발굴조사는 삼강문화재연구소(원장 최종규)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진행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 건물지 16동, 고상건물지 1동, 보도시설(步道施設) 2기, 석단(石壇) 1기, 우물 1기, 담장 4기, 배수로 2기 등이 확인됐다. 

 

이에 합천군과 삼강문화재연구원은 오는 3월 10일(금) 발굴조사 현장(삼가면 금리 622-7번지)에서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두 차례에 걸쳐 지역 주민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를 개최해 그간의 발굴성과를 소개할 예정이다. 

 

- 발굴조사 통해 조선 후기 지방지도 삼가읍성 아사(衙舍) 실체 확인   

 

삼가읍성은 삼가면 금리 일원에 위치하며, 배후 구릉을 감싸는 평산성 형태로 구릉 사면부를 기준으로 좌우로 뻗어 내려오면서 성벽이 평지에 위치하는 시가지 전체를 감싸는 형태다. 삼가읍성의 성벽은 시가지 조성과 경작으로 인해 대부분 붕괴, 유실됐으며 부분적으로 일부 성벽만 잔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고지도를 참고할 때, 읍성 내에 동헌과 객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그 터로 추정되는 곳에 면사무소가 들어서면서 객사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동헌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와 함께 현재 남아 있는 삼가 기양루(岐陽婁)와의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기양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 건물로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조선 중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으며, 동헌의 남쪽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삼가현 관아의 누문(樓門)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건물지는 조선 후기 지방지도에 기록된 아사로 기양루(외삼문)→ 9호 건물지(내삼문 : 동헌의 정문)→ 1호 건물지(동헌 : 조선시대 지방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가 일직선상으로 확인됐다. 또한 기양루와 아사, 사창(舍倉) 등이 표기되어 있어, 1호 건물지는 기양루와 일직선상에 위치하는 중심건물로 아사의 동헌지로 추정된다. 1호 건물지는 적어도 두 번에 걸쳐 증개축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유물로는 1호 건물지 안쪽에서 조선 전기 ‘삼가(三嘉)’ 명 분청사기가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저장용 대옹 ․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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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세기 조선 후기 지방경제사를 밝힐 ‘시폐교구비(市弊矯捄碑)’ 명 금석문 자료 출토

           

비석은 기양루에서 북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의 현대 교란 구덩이에서 출토됐는데, 조사 결과 비석의 출토지가 아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비석은 ‘시폐교구비(시장의 폐단을 바로잡기를 요구하는 비)’로 길이 73㎝, 너비 42㎝, 두께 16㎝로 크기는 작지만 앞면과 뒷면에 상세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다.

 

주목할 것은 비석 정면에????을유정월일(乙酉正月日)????이라는 제작연도와 뒷면에????시규(市規)????즉, 시장의 규범이 4조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면의 제작연도를 참고할 때 1765년 영조 41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조선 후기 비변사에서 작성한 『市弊』의 작성 시점이 영조 29년이므로 한양 도성의 시폐 개혁이 일어나고 12년 후인 영조 41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시폐교구비 에 대한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므로 1825년(순조 25)과 1885년(고종 22)의 을유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8~19세기 조선 후기 지방경제사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전개된 점으로 보아 이 시기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시폐교구비는 조선 후기 합천지역의 경제사를 연구하는데 1차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으며, 특히 시폐교구비 명 금석문의 출토는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로 특히 중요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