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보종찰 해인사는
    불보사찰 통도사(通度寺:佛寶사찰)· 승보사찰 송광사(松廣寺:僧寶사찰)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사찰로 꼽히며,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었으며, 법보종찰로 유명하다.


■ 삼보사찰
     ○ 삼보는 불교에서 귀하게 여기는 세 가지 보물이라는 뜻으로,
         불보()·법보()·승보()를 가리킨다.

     ○ 불보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석가모니를 말하고,
     ○ 법보는 부처가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중생을 위해 설명한 교법 즉 경전,
     ○ 승보는 부처의 교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제자 집단, 즉 사부대중()
     ○ 불보사찰 통도사 : 부처님의 진신사리과 가사가 모셔져 있는 사찰
     ○ 법보사찰 해인사 : 부처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사찰
     ○ 승보사찰 송광사 : 보조국사 지눌이후 열여섯분의 국사 등 덕이 높은 많은 스님을 배출한 사찰


■ 해인사, 창사의미
     ○
해인사 창건의 참뜻은 해인이라는 낱말에 응집되어 있다.
     ○ 해인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삼매는 일심법계의 세계를 가르키는 말이며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 해인삼매는 또한 오염됨이 없는 청정무구한 우리의 본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 우리의 마음이 명경지수의 경지에 이르러 맑고 투명해서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그대로 비치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 해인사 소개


■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高麗八萬大藏經板)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藏經閣)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願力)으로 금당벽우(金堂壁宇)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成宗)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大藏經板庫) 및 석조(石造)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도 있다.

■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海印叢林)이 있어 많은 학인(學人)들로 붐빈다. 말사(末寺)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白蓮庵)·홍제암(弘濟庵)·약수암(藥水庵)·원당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