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春山 李相學 선생 93세로 他界 !!
- 12월 17일 유월장(踰月葬)인 유림장(儒林葬)으로 거행 -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합천이씨 춘산 이상학 선생께서 지난 9일 합천읍 서산리 본가에서 93세의 나이로 운명하셨다. 장례는 같은달 17일에 달을 넘겨 치르는 유월장인 유림장으로 거행하기로 했으며 본가에서 발인하여 합천읍 인곡리에 안장키로 했다.


  □ 춘산 이상학선생 연보(春山李相學先生年譜)

  ○ 선생은 1917년(정사년) 11월 13일에 합천군 가야면 학계(鶴溪) 마을에서 아버지 이문수(李文洙)씨와 어머니 의령(宜寧) 남씨(南氏)의 장자(長子)로 태어났다. 남씨의 꿈에 호랑이가 문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회임(懷妊)하여 선생을 낳으니 용모가 단정하고 오른쪽 어깨에 문창성(文昌 星)의 검은 점이 있으며 총명이 출중(出衆)하여 한번 들으면 모두 기억하였다.

   ○ 6세에 천자문(千字文)을 조부님께 배우면서 “왜놈이 우리나라를 강탈하였으니 우리의 원수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는 조국 독립사상을 품었다.

   ○ 8세에 취학통지서가 나오자 손수 그 통지서를 찢어버리고 왜놈학교에 입학하지 아니하였으며 이후 신식학문은 일체 배우지 아니하였다. 그리고는 마을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는데 독촉하지 아니해도 부지런히 공부하였다.

   ○ 14세에 자치통감(資治通鑑)을 배우면서 수십줄씩 배웠으나 한번 읽으면 모두 외워서 사우(師友)들의 칭찬을 받고 이름이 향중(鄕中)에 널리 알려졌다.

   ○ 15세에 합천군 묘산면 도옥리 파평 윤씨와 결혼하니 부인은 효성이 지극하고 남편을 잘 보필하여 합천 이씨 중앙종친회와 합천유림회의 효부상(孝婦賞)과 열부상(烈婦賞)을 받았다.

   ○ 22세에 지산(芝山) 변도형(卞道亨) 선생을 모시고 매화산중(梅花山中) 에서 손수 자취(自炊)를 하며 독서를 하는 와중에 가끔 시회(詩會)를 열곤 하였는데 결국 왜경(倭警)의 방해로 귀가하였다.

   ○ 27세에 당시 상해에 있던 임시정부(臨時政府)에 가서 조국독립운동을 도우려고 하얼삔(哈爾濱)까지 갔다가 길이 막혀 돌아왔다.  

   ○ 28세에 일제의 징용(徵用)을 피하려고 서책과 자작(自作)한 시문(詩 文)을 마루 밑에 묻어두고 거창 가북산중(加北山中)에 가서 많은 고난을 겪다가 이듬해에 8․15광복 후에 집에 돌아와 책궤(冊櫃)를 파서 보니 습기로 부패되어 완전히 버렸다.

   ○ 31세에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가서 후생들을 교도하였다.

  ○ 35세에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용동에 가서 수년간 후진양성을 하였는데 이때에 잘못 제초된 촌충제거약(寸蟲除去藥)을 복용하고 실신혼절(失神昏絶)하였다가 십여 시간이 경과한 후에 회생(回生)하였으나, 이로 인해 장년시설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고 20여 년간을 신고(辛苦)하였다.

   ○ 37세에 병상(病床)에 있는 몸으로도 인근 마을 학생 수십 인을 교육하였는데 이때에 이택계(麗澤契)가 설립되었다.

   ○ 54세에 부친 매은공(梅隱公)의 상을 당하고 통곡실신(痛哭失神)하였다가 회생(回生)하여 3년간 소식(素食)하였고 조문객이 700여명에 이르렀다.

   ○ 59세에 합천군 용주면 월평리로 이주(移住)하여 중동서원(中洞書院)을 지키면서 남녀 학생들을 교육하였는데 수강료는 일체 받지 않았으며 이후 명덕계(明德契)가 설립되었다.

    ○ 66세에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 선생과 해인사(海印寺)에 유숙하면서 연민(淵民)이 춘산(春山) 선생의 시를 보고 매우 칭찬하면서 막역(莫逆)한 친교(親交)를 청한 일이 있다.

    ○ 90세까지 향교전교(鄕校典校)와 여러 서원(書院)의 원장(院長)을 역임하였고 제1회 성균관(成均館) 한시고선관(漢詩考選官)을 맡은 것을  비롯하여 전후(前後) 70여 차례에 걸쳐 고시관(考詩官)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크고 작은 수많은 백일장에서 장원을 수십여 차례 차지하였다. 또한 수업문인이 수백 명에 달하고 특히 문하에서 배운 제자들 가운데 현직 대학교 교수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학계에서 선생의 사상과 학문을 전수하고 있다. 그동한 저술한 시와 서문과 기문과 상량문, 비문 등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작품을 모두 모아 문집을 만들었는데 그 분량이 무려 17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현재 배포중에 있다.

    ○ 향년 93세로 2009년 12월 9일에 서거(逝去)하여 같은 달 17일(木)에 달을 넘겨 치르는 유월장(踰月葬)인 유림장(儒林葬)을 거행하기로 하였다.